“고독사 현장에서 ‘마지막 따뜻함’ 채워드립니다” [따만사]

“고독사 현장에서 ‘마지막 따뜻함’ 채워드립니다” [따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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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철문을 노크하면서) 아버님 들어가겠습니다.”

유품정리사이자 특수청소업체 ‘바이오해저드’를 운영하는 김새별 대표(48)는 고독사·자살 현장을 청소하기 전 항상 방의 前(전) 주인이었던 고인에게 양해를 구하고 들어간다. 김 대표는 전국의 고독사·자살 현장을 청소하면서 유품들을 정리해 유가족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그는 쓸쓸하게 마지막을 맞이한 고인들의 유품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며 어떤 사연이 있었는지 보고 이를 기록한다.

“어르신 이때 멋지셨네요” “이건 이렇게 두면 안 됐는데…” 등 작업 도중 간간이 고인에게 말을 거는 것처럼 중얼거린다. 김 대표는 이렇게 해야 고인의 생전 흔적을 정리하는 자신의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고 한다.

OOO님 마지막을 정리해드렸습니다. 편히 쉬시길 바랍니다.” 작업이 끝나자 김 대표는 유가족들에게 유품을 전달한다.

“처음 유품을 받은 유가족들은 대부분 화가 나 있습니다. 대부분은 모두 버리라고 말하지만, 막상 유품을 보면 버리지 못하고 일부를 챙겨가기도 하죠.” 

장례지도사 시절 고인 딸의 부탁으로 이 일을 시작해

그는 어쩌다 이 일을 시작했을까. 김 대표는 잠시 기억을 더듬어가며 장례지도사 시절 이야기를 꺼냈다. 장례지도사 시절 그는 마지막을 정리해드린 한 고인의 딸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선생님, 저희 아버지 돌아가신 자리를 치워야 하는데 너무 안타까워서 못 하겠습니다…도와주세요.” 딸은 울면서 부탁했다.

안타까운 마음에 현장을 방문한 김 대표. 방 한가운데에는 고인의 흔적이 있었다. 딸과 함께 살던 고인은 딸이 출근한 뒤 각혈을 하고 세상을 떴다고 한다. 고인은 암 말기 판정을 받아 술에 의존했고, 딸이 계속 말렸지만 듣지 않았다. 딸에게 폭언을 하고 욕설을 했다. 딸은 아버지의 이런 절망이 ‘죽어서야 끝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고인이 세상을 등졌을 때 딸은 후련할 줄 알았다. 하지만 남은 건 후회와 안타까움이었다. 딸은 감정이 북받쳐 자리를 정리하지 못했던 것이다. 김 대표는 말없이 고인의 유품을 차근차근 정리하고 소독해 딸에게 전달했다.

“그때부터였어요 이런 안타까움을 공유해보자며 블로그를 만들어 일기장처럼 사연을 적었어요.”

이후 도와달라는 요청이 점점 늘었다. 결국 고독사, 극단적 선택을 한 사람들의 마지막을 따뜻하게 보내주자고 마음먹고 전문청소업체 ‘바이오해저드’를 차렸다. 그는 현재 고독사, 자살 현장 청소와 유품 정리뿐만 아니라 독거·홀몸노인들의 주거환경 개선을 위한 청소 봉사를 하고 있다. 

주변 사람들은 모르는 고인들의 섬세함
김 대표는 다음 고독사 현장으로 이동했다. 그는 이날 현장 주변에 살고 있는 주민들로부터 고인에 대한 평가를 들었다. “어휴 말도 말아, 그 양반이 가서 우리도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그 양반 만나기만 하면 성질부터 냈어.”

김 대표는 조용히 방에 들어와 소독제부터 분사했다. 현장은 벌레들이 자리 잡고 있었고 소독제를 분사하고 들어가야 원활한 작업이 가능했다. 김 대표는 고인의 유품들을 하나씩 정리하던 도중 일기장을 발견했다.

일기장에서는 고인이 반듯한 글씨로 시를 여러 편 작성했고, 시에서는 주민들이 증언했던 괴팍함과는 다른 섬세함이 느껴졌다. 다른 일기장을 살펴본 김 대표는 군복차림의 고인을 발견했다. 고인은 베트남 전쟁에서 소대를 이끌던 주월한국군 소대장이었다고 한다. 민간인과 적의 구분이 어려웠던 전장. 주민들이 웃는 얼굴로 친절을 베풀며 소대원들이 접근한 순간 베트콩은 숨기고 있던 수류탄을 격발시켰고 고인을 제외한 모든 소대원들이 전사했다고 한다.

이후 고인은 PTSD(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았다. 월남에서 귀국한 이후에도 열약한 의료 환경 때문에 치료받지 못한 채 주변 사람들을 배척했다. 특히 친절하게 다가오는 사람을 극도로 경계했다.

“현장을 다니다 보면 아무것도 모르는 주변 사람들이 욕을 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런 사람들을 보면 야속할 뿐이죠. 유품 정리를 통해 이런 분들을 조금이라도 따뜻하게 대변해주고 싶었어요.”
따뜻한 말을 해줬더라면…하지만 후회는 언제나 유가족 몫

김 대표는 30대 고독사 현장을 방문했다. 의뢰인은 고인의 아버지였다.

고인이 된 아들은 생전 활발한 성격이었다고 한다. 아들은 어느 날 콘서트장에서 한류가 좋아 한국에 온 외국 여성과 운명적인 만남을 가졌고 두 사람은 곧 가까운 사이로 이어져 결혼을 약속하게 됐다.

하지만 당시 아버지는 결혼을 반대했다고 한다. 남들이 부러워 할 정도로 재력을 갖춘 아버지는 아들의 결혼생활을 우려했지만, 아들의 고집을 꺾진 못했다. 아버지의 우려대로 이들의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생활문화가 너무나도 달랐던 이들은 매일 다퉜고, 여성은 고향으로 돌아가 버렸다. 아들은 직장도 그만두고 폐인이 됐다. 암호 화폐 투자에도 실패하면서 더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고 한다.

어느 날 아들은 아버지에게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모두 말했다고 한다. 아들이 바란 건 위로였지만 아버지는 “너 그럴 줄 알았다”며 심하게 나무랐다. 아들은 컴퓨터에 아버지와 세상을 향한 원망이 담긴 유서를 남기고 극단적 선택을 했다. 시신은 사망 3주 만에 아들 친구가 발견했다.
현장에 온 고인의 아버지는 아들의 신발을 가슴에 품고 “내가 그렇게 말하면 안 됐는데” 하며 울부짖었다. 김 대표는 “따뜻한 한마디만 건네줬으면 이런 사태를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라며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고독사 유품정리사 일을 갑자기 그만두고 싶어졌을 때
가끔 유품정리사 일을 그만두고 싶을 때도 있었다. 김 대표는 “어린아이 사망 현장을 봤을 때”라고 했다. 김 대표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 남성의 유품과 집을 정리하러 갔다. 집안에 들어서자마자 그는 남성이 있던 옆 침대에 또 다른 사체 흔적을 발견했다. 남성은 자신의 5살 된 딸을 먼저 살해하고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이었다. 숨이 막혔다.

“몸이 굳으면서 아무 생각도 못 하겠더라고요. 그때 처음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 상황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묻자 김 대표는 “극복하지 못했다. 가급적 어린아이가 희생자로 있던 현장은 피하면서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며 “자라나는 아이들을 봐서라도 참아가며 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지방으로…5번의 이사
김 대표의 사업장은 청주의 한 시내에 자리 잡고 있었다. 주변은 조용했고 가끔 커다란 화물트럭이 지나다녔다.

“원래는 서울에 사업체가 있었는데 5번이나 이사를 하면서 여기까지 오게 된 겁니다.”

김 대표의 첫 번째 사업처는 서울에 사람들이 거의 다니지 않던 골목이었다고 한다. 그는 “사람이 세상을 떠난 자리를 청소하고 유품과 폐기물을 처리하다 보면 특유의 냄새가 난다”면서 이런 냄새들을 사람들이 알아차리고 싫어해 깊숙한 골목으로 들어갔다고 했다.

하지만 그의 사업체를 처음 받아준 건물 주인은 얼마 안 가 이렇게 말을 했다고 한다. “김 대표, 난 그렇게 생각 안 하는데, 주변 사람들이 건물에 이상한 업종을 내주면 일이 안 좋게 풀린다고 하네?” “이제 2년 됐으니 다른 곳으로 한번 옮겨도 되지 않겠어?”

그는 아무 말을 하지 못하고 다른 자리를 알아봤다. 하지만 이후에도 서울지역에서만 5번이나 비슷한 상황을 겪고 사업체를 옮겨야 했다.

“현장을 정리하고 폐기물을 그날 처리 못 할 때가 있어요. 그때는 사업장으로 폐기물을 잠깐 두고 처리하는데 주변 사람들은 그것도 용납 못 해서 화를 내더라고요.”

김 대표는 폐기물 냄새 때문에 환경부 사람들까지 사업장에 나왔다고 한다. 그런 수모를 겪은 이후 그는 사업체를 서울에서 청주로 옮겼다. 다행히 청주에서는 누구도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았다.
TV 프로그램에 나온 이후 달라진 점은?
김 대표는 3년 전 유재석과 조세호가 진행하는 예능프로그램 ‘유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했다.

TV에 나오기 전에는 정말 힘들었어요. 주민들이 소금을 뿌리는 건 기본이었죠. 어떤 경우엔 욕을 하면서 빨리 가라고 해요. 현장에 구경 나온 사람들이 자기 아이들에게 공부 못하면 저렇게 된다는 식으로 말도 해서 상처도 많이 받았어요.”

김 대표는 이런 하대들이 TV에 출연하고 자신의 직업이 제대로 알려진 뒤에야 줄었다고 한다. 그는 “아직 눈총을 받는 경우는 있지만, 예전보다는 많이 줄어서 보람을 느낀다”라고 말했다. 김 대표의 작업을 이해하면서 사회적으로 공감해주는 사람들도 많이 늘고 있다고 한다.

이 직업을 계속할 계획이냐고 묻자 그는 “지난 15년간 이 일을 해오면서 보람을 느껴가고 있다. 특히 우리 아이들이 다 클 때까지는 계속할 것 같다”며 김 대표는 웃으면서 말했다.
세상에 하고 싶은 말
지난해 12월쯤인가요? 보건복지부가 고독사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어요. 그런데 결과는 제가 일하는 현장과 거리감이 있었어요.”

김 대표는 알려진 것보다 고독사 현장이 훨씬 많다고 주장했다. 그는 “매일 11명 정도의 고독사 피해자가 발견되고 있다”며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고독사 관련 공익광고를 찍은 적이 있었는데 광고를 어디에다 내냐고 물으니 KTX(고속철도) 객실에 한 달간 낸다고 한다”라며 “그런 정책이 ‘고독사 후보군’에 도움이 될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김 대표는 최근 2~30대 고독사 현장을 많이 접한다면서 1인 가구가 늘어나는 만큼 그에 맞게 더 다양한 채널로 고독사 예방 홍보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요즘 2~30대뿐만 아니라 중·장년층들도 대부분 TV가 아닌 유튜브, 인터넷 게임·커뮤니티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경우가 많아요. 바깥세상에서의 고독사 방지 홍보도 중요하지만, 고독사 후보군이 머무는 인터넷 내부를 통한 홍보도 이뤄지길 바랍니다.”

김 대표는 “혼자 사는 사람들 모두 고독사 후보군에 들 수 있다. 이들에게 필요한 건 가족들과 주변의 제대로 된 관심”이라며 “여기에 정부가 제대로 관심을 가지면 고독사가 감소해 제가 하는 일이 줄어들겠지만, 오히려 더 기쁠 것 같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최근 현장 유품 정리 과정을 촬영한 영상을 유튜브 채널에 계속 올리고 있다. 그는 유튜브를 운영하면서 수익이 고독사 현장을 정리 못 하는 유가족들과 자살을 생각한 사람들을 돕는 데 쓰고 있다고 한다. 그는 “이런 일을 하면서 관심의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을 직접 도우니 보람을 많이 느낀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계속 일을 하는 이상, 이런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청소와 기부는 계속될 것 같다”고 밝혔다. 그는 인터뷰를 마치고 쓸쓸하게 세상을 떠난 사람들에게 마지막 따뜻함을 전해주기 위해 다시 이동했다.

■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사람들’(따만사)은 기부와 봉사로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들, 자기 몸을 아끼지 않고 위기에 빠진 타인을 도운 의인들, 사회적 약자를 위해 공간을 만드는 사람들 등 우리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웃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주변에 숨겨진 ‘따만사’가 있으면 메일(ddamansa@donga.com)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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